posted by 요굴 2014. 7. 3. 17:37

도시락을 들고 상디는 계단을 올랐다. 녹슨 철문 앞에 멈춰선 상디는 굳게 잠겨 있던 자물쇠를 손으로 몇번 만지작 거렸는데 놀랍게도 열쇠가 없는데도 자물쇠는 쉽게 상디의 손에서 풀렸다. 학교옥상의 자물쇠가 망가져있단 사실을 상디는 일주일전에 안쓰는 책걸상을 옥상으로 옮기라는 담임의 귀찮은 심부름 때문에 알게되었다. 그때도 느낀거지만 진짜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자물쇠를 보며 상디를 고개글 갸웃거렸다. 정말 교묘하게 망가져서 저절로 망가진거라기보단 누가 망가트린것 같단 생각을 지울수 없었다. 아무렴 어때란 생각을 하며 상디는 옥상문을 열었다. 녹이 슬은 문은 듣기 싫은 쇳소리를 내었만 철문을 열자 휘감기는 따뜻한 봄바람은 기분 좋았다. 아직 학기 초라 그런건지 아님 여기 자물쇠가 망가진걸 아는 이가 없는건지 학교옥상이라면 막연히 떠올릴만한 쓰레기나 담배연기, 인상쓰며 위협을 가할 양아치도 없는 옥상에 상디는 기지개를 피고는 그늘진 좋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싸온 도시락을 풀어낸뒤에 합장을 하고 자신이 만든 음식을 입에 집어넣었다. 자신이 만든거지만 언제 어떤 음식을 먹어도 자신의 요리는 정말 맛있었다. 시끄러운 두 녀석이 빠져 평소와 달리 조용한 식사 시간에 상디는 설마 그 두 녀석이 병결일줄은 상상도 못해 싸온 엄청난 양의 도시락에 한숨을 내쉬었다. 쇠라도 씹어먹을듯한 튼튼함을 빼면 시체인 마리모녀석이랑 루피가 전염성 눈병에 걸려 무려 병결로 학교를 쉬다니.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났단게 상디는 아직도 이해가 안갔다. 녀석들이 있으면 식사시간이 아닌 전투 시간으로 변하긴 하지만 역시 밥은 혼자 보다 누군가와 함께하는게 좋다. 저번에 알게된 옥상이라도 올라와서 기분 전환삼아 먹어야 겠다 생각을 했는데도 왠지 모를 적적함을 지울수는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끼익 거리며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가 나 상디는 화들짝 놀라 옥상문 쪽을 바라봤다. 젠장 처음으로 올라와 본건데 딱 걸릴줄이야. 당연히 선생일거라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던 상디의 눈에 낯익은 자신과 같은 교복이 보였다. 학생?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올린 상다의 눈에 담기는 인형의 정체에 상디는 눈을 크게 떴다. 소문의 신입생이자 자신의 적인 그 `트라팔가 로우`였다.


 이 학교 학생이라면 아니 인근 지역 학생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트라팔가 로우였다. 전국 모의고사에서 1등을 한번도 놓친적 없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천재 소리를 듣고 있는 그는 눈밑의 짙은 다크서클과 큰키에 비해 마른몸이 음침한 느낌을 줄법도 하건만 잘 갖춰진 외모로 많은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상디에게는 빌어먹을 녀석이었다. 모든 레이디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그에게 있어 많은 여학생들의 시선을 빼앗은걸로도 모자른지 그 고운 눈에서 눈물까지 흘리게 하는 트라팔가 로우는 공공연한 남자들의 적이자 재수없는 녀석이었다. 저번달에 교문앞에서 고백했다가 단칼에 거절당하고 얼굴이 붉어진채 도망갔던 아리따웠던 여학생이 떠오르자 잊고있던 분노가 다시 떠올라 상디는 자리를 피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도시락을 싸서 다시 내려가는건 귀찮았고 자신이 피해서 도망가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떠올랐기에 상디는 무시하기로 했다. 적적함이 없지 않아 있지만 평화로운 식사시간은 흔치 않았고 여기에서 보이는 하늘이 썩 괜찮았으니까.

상대도 자신을 눈치챈거 같았지만 딱히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기에 상디는 무시한채 식사를 재개했다. 하지만 곧 느껴지는 시선에 상디는 미간을 점점 찌푸렸다. 평소 성격대로 뭘보냐 이 새끼야 당장 눈 안돌려 라고 화를 낼까도 했지만 상디는 참을인자를 세번 새겨넣었다. 하지만 상디의 한계점은 낮았고 고개를 쳐들고 시선이 느껴지는 장소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아닌 자신의 도시락을 쳐다보고 있던 로우도 자신의 시선을 느꼈는지 천천히 고개를 올려 무덤덤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여전히 재수없는 면상이라 생각하며 상디는 입을 열었다.

 


"야 밥먹는거 처음 보냐? 앙? 그 눈 당장 저리 치워라"
"실례를 저질렀나 보군. 미안하다. 식사를 계속 하도록"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 도시락으로 고개를 돌리는 로우에 상디는 황당함을 느꼈다. 싸가지 없는 녀석이라 들어서 한바탕 시비를 걸어줄까 했는데 바로 이렇게 저자세로 사과를 해올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왠지 느껴지는 뻘쭘함에 도시락으로 다시 시선을 돌린 상디는 다시 밥을 먹으려 했다. 하지만 왠지 신경이 쓰여 상디는 계속 옆을 힐끔 거렸다. 도시락으로 매점에서 사온거 같은 빵을 들고 엄청나게 미간을 찡그린채 로우는 빵을 도대체 먹는건지 안 먹는건지 모를정도로 야금야금 베어 먹고 있었다. 무슨 저렇게 맛없게 빵을 먹냐. 깨작깨작 먹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 상디에게는 로우를 싫어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왜 저 녀석을 의식하나 싶어 애써 고개를 다시 돌린 상디는 밥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들었지만 결국 얼마 가지 못했다. 두 식충이도 그렇고 왜 레이디도 아닌 녀석들한테 왜 이렇게 맘이 쓰이는걸까. 배고파 쓰러져있던 루피와의 엽기적인 만남을 떠올리며 상디는 그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요리사일때만 발휘되는 흔치 않은 남자에 대한 온정을 건드리는 로우에게 말을 건넸다.

 


"야 넌 무슨 밥을 그렇게 맛없게 먹냐"

 


자신의 갑작스런 참견에도 여전히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는 로우는 빵을 미간을 찌푸린채 베어먹었다. 대답은 안하려나 하는 생각을 할때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빵은 밥이 아니다"
"밥은 아니지만 식사잖냐 웃으면서 먹으라고"

 


상디가 하는말을 무시하듯 빵을 입에 물고 꾸역꾸역이란게 어울리는 느낌으로 삼켜대던 로우는 아까보다 화난듯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보지말라고 화를 내놓고서 왜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줄 모르겠군. 난 빵을 싫어한다 그런데 싫은걸 먹으면서 웃으라니. 그런 도시락을 가지고 있는 녀석다운 충고이군."
"지금 내 도시락에 시비거는거냐 앙?"
"시비거는건 도시락이 아니고 너다. 누가 만든건지 몰라도 영양밸런스까지 신경쓴 훌륭한 도시락을 가진채 충고라니 필요없다."


 

예상외의 말에 놀란 상디는 멍한 표정을 하다가 웃어버렸다. 상디가 웃든말든 계속 미간을 찌푸린채 빵을 먹는 로우를 보며 상디는 손짓을 했다.


 

".....재수는 없지만 두식충이 녀석들하고 달리 보는 눈은 있는 녀석이네. 일로와봐"
"날 어떻게 판단했는지 몰라도 그런 말에 따를 샌님으로 착각하고 있다면 오산이다"


 

서늘한 로우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상디는 더한 기세로 미간을 찌푸렸다.

 


"야 그럼 거기서 어떻게 먹겠단거냐? 특별히 이 특급 요리사 상디님의 맛있는 요리를 먹게 해주겠다고 마침 식충이 두녀석이 아픈걸 모르고 많이 만들어 왔으니까."
"네가 그걸 다 만들었다는 거냐?"
"그럼 누가 만들었단 거냐 이걸?"


 

가만히 상디를 바라보던 로우는 알수 없다는 듯이 도시락과 상디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결국 조용히 일어나 상디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로우 몫으로 내민 숟가락과 젓가락도 받아든 로우는 가만히 손을 모아 합장을 하더니 잘먹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모습에 상디는 의외로 예의바른 녀석이구나 싶어 조금 놀랐다. 음식에 예의를 갖출줄 아는 녀석치고 나쁜 녀석은 없단게 상디의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계란말이를 제일먼저 들어 입어 넣고 오물거리며 먹던 로우는 놀란듯 눈을 좀 크게 뜨고 상디의 얼굴과 계란말이를 번갈아 바라 보았다. 그 반응에 상디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까 빵을 먹을때의 찌푸려진 표정과 매우 대조적인 표정과 반응이 뿌듯함을 주었다. 조용히 꽤나 많은 양을 먹는 로울르 보며 상디도 놓았던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었다. 대화는 없지만 아까보다 기분 좋은 식사시간이 된 느낌이었다.


 

"잘 먹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군"


 

기대도 안했는데 꽤나 솔직한 감상에 상디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궁금한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근데 너 빵이 싫으면 삼각김밥을 먹으면 되지 않냐? 도시락은 무리라해도"
"오늘 학식이 맛이 없던건지 갔더니 빵 말고는 남은게 없었다. 그래서 원래는 굶으려고 했다."
"하 빵 먹을바에야 굶는게 낫다는거냐? 어지간히 싫어하네 그런데 왜 빵을 그렇게 인상쓰며 먹고 있었냐? 며칠 굶은거냐?"
"....음식해주시는 아주머니가 아프셔서 이주동안 못 나오셨다."
"그럼 사서든 만들어서든 뭐든 먹음 되잖아?너 바보야? 설마 2주동안 굶었다고?"
"배고프지 않았으니까. 방금도 빈혈을 동반한 영양실조 증상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저런 빵을 참고 먹지 않았을것이다."

 


대화할수록 어처구니 없는 녀석이란 생각을 하며 상디는 한숨을 내쉬었다. 먹는다는 기본적인 기쁨도 없는 녀석이라니. 그래도...방금 자신의 도시락을 먹으며 새로운 반찬을 입에 넣을때마다 묘하게 움직이던 눈썹을 떠올리며 상디는 킥킥 웃었다. 그건 나름 놀라움과 기쁨의 표현이었던건가. 잘 먹었다며 일어나서 가려는 로우의 뒷모습을 보며 상디는 왜 자신은 레이디도 아닌데 이런 녀석들한테 약한것일까란 생각을 하며 소리쳤다.

 

 

"야 내일도 이시간에 여기로 올라와라! 밥 먹여줄게"

 

 

잠깐 멈칫한 로우의 고개가 미세하게 위아래로 흔들린것을 본 상디는 피식 웃으며 교복상의에 있던 담배를 빼서 물었다. 두 녀석이 다 나으면 정말 엄청난 식사시간이 될거 같군. 그런 생각을 하며 상디는 입에 담긴 연기를 파란 하늘을 향해 뿜어냈다.